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1993 대전 엑스포 (문단 편집) == 인기와 파급력 == 1893 시카고 엑스포에 8칸 규모의 기와집([[http://www.spot21.co.kr/img/project_expo.JPG|사진]])으로 참가한 지 100년 만에 스스로 주최국이 된 엑스포이다. 또한 이 엑스포는 '''성숙된 [[민주주의]] 정권하에서 개최되어 대한민국의 새로운 이미지를 알렸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당시 발전을 거듭하던 한국의 저력이 제대로 발휘된 행사로, 대한민국이 가장 희망으로 가득찼던 황금기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세계 108개국과 33개 국제 기구, 대한민국의 200여 개 기업이 참가했다. 정부와 민간이 합쳐 1조 8천억 원을 들였고, 대한민국 국민 3명 중 1명꼴인 1450만 명이 관람하여 '''대박'''을 쳤다. 덧붙여 대기업들이 주요 전시장을 스폰서했다. 대표적으로 [[LG|럭키금성그룹]]이 테크노피아를, [[삼성]]이 우주탐험관을 지원했다. 이 엑스포 하나 한다고 [[조차장]]인 [[대전조차장역]]에 '''[[엑스포역]]'''이라는 [[임시승강장]]까지 놓았는데도 사람이 꽉 찼을 정도였다고 한다. 행사 당시에는 밤이 되면 밤마다 [[레이저]] 기둥을 쏘아 올리는 건 기본이었다. '''화려하다'''는 말은 이런 것을 두고 말하는 것이었다고 말했을 정도로. 게다가 당시 12시 넘어서는 심야 영업 규제가 전국적으로 실시되던 중이었으나 엑스포와 유성온천을 두고 있는 대전 유성구는 관광특구로 지정되어서 그런 규정에 해당되지 않았으므로, 12시쯤 되면 전국 방방곡곡에서 노는 사람들까지 몰려와 유성구 지역은 다음날 새벽까지 말 그대로 [[난장판]]을 이뤘다. 당연하지만 '''엑스포 기간 동안 내내.''' 이들은 당시 유성의 [[궁동(대전)|궁동]] 지역을 '''[[압구정동|압구]]궁동'''으로 부르기도 했다. 1990년대에 지리적으로 대전에 가까운 지역을 넘어 전국의 [[국민학교]][* 이 당시는 아직 [[초등학교]]로 바뀌기 전이었다. 초등학교로 바뀐 건 1996년의 일이다.]를 다닌 사람들은 많이들 가봤다. 또한 이해에 졸업반이었던 나이층[* 1987년생(유치원생), 1981년생(국민학교 6학년), 1978년생(중학교 3학년), 1975년생(고등학교 3학년).]은 여기에서 [[졸업 앨범]]용 사진을 촬영하기도 했다. 특히 개최지인 대전은 정도가 너무 심했는데, 특히 엑스포 회장에서 바로 걸어서 10분, 5분 거리에 위치한 대덕초등학교(당시는 국민학교), [[대덕중학교(대전)|대덕중학교]], [[대덕고등학교]]는 소풍 장소 50% 이상을 이 엑스포과학공원과 근처 [[국립중앙과학관]]으로 배정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 엑스포가 열린 1993년부터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약 7년 동안 엑스포 주변으로 소풍만 8번을 간 경우도 있을 정도. 바로 앞에 있는 대덕중학교의 경우 소풍을 가면 꼭 엑스포장으로 갔는데, 당시 소풍을 가면 사복을 함께 지참하였고, 아침에 엑스포장에 들어가면 가지고 간 사복으로 갈아입은 후 [[둔산동(대전)|둔산동]]으로 가서 놀다가 귀가 전에 다시 들어와서 교복으로 갈아입고 귀가하는 식이었다. 물론 다시 들어오는 시간이 늦어 다음날 엉덩이에 불 나는 학생도 있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국내 최초로 [[서울특별시]]가 아닌 지역에서 개최된 세계구급 행사로서, 방송 3사에서 전야제를 생중계하고 그밖에도 지상파 뉴스에서 꾸준하게 소식을 다루었다. [[영화배우]] [[소피 마르소]]가 방한하여 국제관 [[프랑스]] 부스에 방문한 뉴스가 보도되기도 했다. 특히 당시는 평일 낮방송 정파 시간이 있어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 반까지 방송이 나가지 않았는데, 엑스포 기간에는 방송 시간이 앞뒤로 30분 연장되어[* 평일 오전 10:00~10:30, 오후 5:00~5:30.] 해당 시간에는 지상파 3사가 모두 엑스포 관련 뉴스와 콘텐츠 등을 방송했다. 당시 '''꿈돌이안내'''에서 운영되던 [[인터랙티브 키오스크]]는 [[Windows 3.1]] 기반이었으며, [[터치스크린]]을 장착하고 있었다. 이를 통해 개별 전시관 방문을 예약할 수 있었는데, 이는 2000년대에 등장한 여러 [[테마파크]]에서 개별 [[어트랙션]]에 대해 실시하는 예약 제도의 시초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예약을 하기 위해 개장하자마자 사람들은 꿈돌이안내소로 우르르 달려갔다. 그리고 물론 관람객의 근성을 길러주기 위해 예약 제도를 실시하지 않는 전시관들도 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